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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있는그대로....
최고관… 작성일 : 16-06-23 14:50 조회 : 3,322

있는 그대로!
 
인간은 마음의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있을까?
인류는 과연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 놓기 전에 먼저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보자. ‘유발 하라리’가 쓴 책 “사피엔스”(sapiens)에서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인류가 인지하기 시작한 때는 대략 7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시대에는 인류는 ‘수렵채집시대’이며 ‘공유공동체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 같이 산과 들로 강으로 바다로 나가서 과일, 야채, 생선, 고기 등을 보이는 대로 자유롭게 채집하여 함께 나눠 먹던 시대였다. 그리고 잉태되어 출생한 자손들도 공동으로 양육하였다. 따라서 자연스레 사리사욕도 사유재산도 또한 시기와 질투, 투쟁, 경쟁 등이 불필요 했다. 아마도 이 시대는 인류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1만 2천 년 전, 인류의 최대 사기극이 펼쳐진다. 농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 편하게 음식을 구할 수 있다는 속임수에 자충수를 두고 만다. 가장 먼저 수렵채집시대의 풍부하고 다양한 먹거리는 농사를 지으면서 제한되고 만다. 제한된 먹거리는 인체에 영양분 결핍을 초래하여 건강은 약화되고, 또한 농경재배의 심한 노동으로 몸은 더욱 더 힘들어진다. 나아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을 소유해야 하기에, 사리사욕의 사심이 발동하여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하고 탐욕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연합이 되고,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나라가 생기고, 국가가 탄생하고, 급기야 멈출줄 모르는 경쟁심에 전쟁도 불사하기에 이른다. 인간은 점점 욕심에 눈이 멀어가고 마음은 황폐화 되어가고 있었다. 개인과 가족 및 국가는  살아남기 위해서,인간은 인간을 배척하고 투쟁하여 쟁취해야 하는 상대인 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인간은 더 넓은 땅,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등 상대적으로 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욕심에 점점 불안해지고 불행하게 되었다. 인류의 불행은 바로 농업혁명에서 시작된 것이다. 항시 행복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로 변질되어서, 7만 년 전 태초의  인간 본연의 순수한 마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인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퇴행적 진화를 거듭하였다. 다양한 인류의 종이 풍요롭게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사피엔스라는 인류가 다른 인류의 종을 멸종시켜가고 있었다. 그리고 본래의 인간 모습 그 자연의 감성과 점점 멀어져 가는 행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500년 전 과학혁명, 250년 전 산업혁명, 50년 전 정보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모습은 다시 한 번 크게 변질되었다. 생명공학혁명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의 로봇과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시 한 번 인류는 크나큰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시대를 지구상에 펼치려고 야심차게 준비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 지구상에 인간은 사라지고 영원히 살아갈 인공지능만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사피엔스의 계획대로 진행 될 것 같아 보인다.

사피엔스는 자연계, 생태계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인류도 파괴되었고 결과적으로 불행해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의 감성은 변함없이 뇌리에 남아있어서 행복했던 7만 년 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는 더욱 강력해졌다. 이제 인류는 가장 행복했던 수렵채집시대의 “정신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 물론 그 시대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 때의 거짓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사람냄새가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의 세계”를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필자는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는 신경정신과 질환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유하는 한의사이다. 30년 동안 임상 현장에서 수많은 마음질환 환자를 보아 왔다. 기억나는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무사이면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여성이 불안장애 및 공황장애로 왔다. 이 환자는 근 20여 년 동안 노동부에서 평가하는 업무평가를 1등으로 받는 등 회사 내에서는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다. 항상 열심히 일하고 까다로운 업무도 도맡아가며 과도하게 업무를 수행하였다. 최근 매년 실시하는 업무평가에서 또다시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안절부절 못하고 쓰러질 것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이 발로가 되어, 행여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불안해진 상태로 보인다.

분노를 조절 못하는 한 여성이 있었다. 첫 직장에서 남자 상사들이 부당하게 업무를 지시하는 것에 화가 나서 폭음과 폭식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이를 참지 못하고 회사 내의 기물을 던지고 엎어버리는 지경까지 갔다. 환자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음주 폭행을 당하여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남성에 대한 투사로 전이가 되어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처럼 음주 폭행을 행하게 된 것이다. 환자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고 울면서 이야기 하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가슴에 품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 환자의 경우이다.

젊은 여성이 환청과 망상으로 2년째 시달리고 있었다. 은행에 근무하던 중에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 남자가 또 다른 여성과 교제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력이 낮았던 이 여성은 항상 상대 남자에 학력에 대한 열등감에 싸여 지내다 상대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만 하다가 조현병(정신분열병)의 주요증상인 환청과 망상에 빠져버린 경우이다. 환자의 인생을 경청해보니 아버지의 음주와 주사병으로 어머니와 세자매가 고통을 받으며 자라왔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딸로서 어머니에 대한 연민 때문에 원래 자신의 꿈이었던 스튜어디스를 포기하고 일찍 취업하여 은행원이 되었고, 그 후로 자신감은 결여되고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고민과 갈등을 표현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항상 열등감에 시달리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결국 편집증으로 빠지면서 조현병이 전환된 경우이다.

도박 및 게임 중독에 빠진 젊은 환자가 있었다. 1억 넘게 빚을 내어서 스포츠토토라는 도박으로 한 탕에 만회하려다가 결국 수렁에 빠진 청년이었다. 이 환자는 성장기 시절 형에 대한 콤플렉스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우울했으며, 틱장애도 앓았던 병력이 있었다. 형이 공부를 월등히 잘하여 서울대를 입학하게 되고 자신은 가족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가족의 관심과 주목을 받기 위해 쉽게 이룰 수 있는 도박과 게임에 심취하게 된 것이다. 

여자 친구에게 버림을 받고서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시도를 한 청년도 있었다. 여자 친구에게 버림을 받은 이유가 모두 부모가 못 생긴 외모를 남겨주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부모를 원망하고, 비관하여 일을 저질렀다. 어릴 때부터 너무 애지중지 키워서 자립성과 독립성이 결여된 경우이다. 의존성이 높아서 자그마한 스트레스에도 견디지 못하고 자신에 대하여 낮은 가치감을 소유하는 나약하고 소심한 유형이다. 

다른 유형을 한번 보자. 부모의 이혼 후에 강박불안증이 온 경우이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불안한 심리가 압박으로 다가왔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원칙에만 매몰되어 매일 자기 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준비만 하고,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그에 비해 너무 뒤처지는 환경을 보며 좌절하였고,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번져서 ‘너는 이 나이에 무엇을 이루었니?’하는 자책성 환청이 들려 몹시 괴로워하는 조현병 환자였다. 이는 강박성격장애의 패턴으로 나타난 것이다.

메이크업 매니저가 되는 것이 꿈인 남자 대학생이 과도한 화장품 알러지로 좌절하였다.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학교 시절부터 이성에게 성적으로 심취되어 쾌락을 탐닉하였다. 어린 나이에 이미 무절제한 성관계로 몸과 마음이 피폐화 되어 있었다. 이 환자는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와 잦은 다툼으로 홀로 할머니에게 남겨져 외롭고 쓸쓸하게 보냈던 것이다. 그 마음의 허전함을 자위와 성행위로 채우며 달래는 것이 습성화 되어 버렸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엄마 대신 여성을 통해 만족하려는 쾌락추구형으로 발전된 경우이다.

5년 전 친한 친구랑 사소한 말다툼으로 관계가 멀어져 혼자 고민하며 지내는 젊은 여성이 있다. 친한 친구가 오해를 하고서 관계가 서먹해진 상태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따돌림을 시켜서 몹시 괴로워하고 힘들었다. 그 사건 이후로 친구들 만나기를 꺼려하고 집에서 틀어박혀 고민 걱정만 하며 지냈다.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점점 고립되고 단절되는 은둔회피형으로 진행된 경우이다.   
 
위의 사례들을 살펴보았듯이 임상 현장에서는 마음의 병으로 아파하는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있다. 마음의 병은 모두 인간 본연 그대로의 본성을 상실하고, 허구로 뒤덮여진 상태를 말한다. 산업혁명과 과학문명의 시대를 거쳐 생명공학 혁명이 펼쳐지는 이 시대에 인간의 영혼은 점점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조현병 등 정신과 질환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살인, 강간, 폭행, 테러, 자살 등이 증가하면서 인류의 정신세계에 심각한 위기상태임을 현저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삶은 질적으로 급격하게 저하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미명하에 정신과 질환은 근원적인 치료 없이 방치되고, 뚜렷한 대안이 없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안타깝고도 답답한 상황이다.

이제는 개인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인간의 정상궤도를 벗어나는 사건들이 범람하고 있다. 아들과 딸이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적인 사건도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못하는 일이다. 반대로 부모가 자기가 낳은 자녀를 학대하고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끔찍한 일도 있다. 성격 차이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은 점차 심화되어 폭행을 일삼는가 하면, 보험금을 노리고서 남편을 청부살해하는 사례들은 듣기만 해도 섬뜩하다. 이혼율은 급증하여 10쌍 중 3, 4쌍은 결별을 하는 현실 속으로 결손가정에서 자라야만 하는 아이들은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일부 학생들은 인터넷 상에서 타인의 정보를 공개하는 일명 ‘신상털기’를 재미삼아 벌여 집단적으로 개인을 소외시키는 등 사회와 사람을 등지고 은둔회피하는 경우들도 속출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집단적으로 왕따를 시켜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하는 일들도 빈번하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학생이 선생에게 욕을 하고 폭행하는 반인륜적인 교권침해현상도 이제는 일상적인 사건으로 여겨지고, 자기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성추행, 성폭행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건의 피해자는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 하나로 평생을 멍에를 지고 살아갈 수 있는데, 그 고통을 조금도 생각지 않는 파렴치한들이 난무하는 것이다. 반항하는 대상을 태연하게 살인을 하는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들을 보면 ‘과연 이런 얼굴이 인간의 본래 모습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세상이다. 더구나 본인의 분노를 억제 못하여 아무런 이해관계와 연고도 없는 사람을 살해하는 ‘묻지마 살인’을 보면 인간이 어디까지 바닥으로 추락할지 가늠이 안 된다. 더 나아가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고 테러를 행하고 총기를 난사하여 대량 살상을 시행하는 지금, 우리는,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과연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인간은 왜 이렇게 피폐화되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와 같이 인간의 포악성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 과연 해결책과 치료법은 있는가. 대안 마련과 모색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오히려 해결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여기 충격적인 보고서를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정신의학자 앨런 프랜시스가 쓴 양심고백서인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saving normal)(부제:정상인을 구제하자)이라는 책에서 15년 만에 소아양극성 장애 환자가 40배, 자폐증 환자 20배, 과잉행동장애 3배, 성인 양극성 장애 2배로 증가한 숨겨진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정신과 질환 환자가 된 것일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정신 장애가 정상을 잠식해 버린 이 상황에서 현대인을 구제할 길은 무엇인가? 저자는 진단의 기준이 낮추어져 공황장애, 우울증, 조현병, 분노조절장애 등의 정신과 환자가 되기 쉬워져 진단 인플레이션이 초래됐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진단의 기준을 낮추어 정신병이 양산되면 약이 대량으로 팔릴 수 있고 마케팅에 성공하여 회사의 성장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탐욕이 빚어낸 반인륜적 결과이다. 탐욕에 눈이 멀어 인간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직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인간의 질병을 이용하는 이러한 행위는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따라서 우리 인류는 인간의 본성을 둘러싸고 있는 허상과 허구, 거짓들을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의 정신으로 회복될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임상 현장에서 정상인인데 억울하게 정신병으로 진단되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이 보았다. 정말 가슴 아프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인류를 휘감고 있는 사악한 분위기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희망의 실마리는 있다. 현대 의학이 태동하기 훨씬 이전인 약 1800년 전, “상한론”이라는 고대자연의학서가 있었다. 이 책은 고대인들이 질병 속에 있는 환자들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고 치유한 인류최초의 의학기록서이다.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을 찾아내어 근원적으로 치료한 점이 탁월하다. 병의 주요한 원인에 따라 인간의 유형을 패턴화하여 분류해 놓았다. 또한 마음의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여 치유한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경쟁심을 핵심감정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남보다 먼저 앞서 가야한다는 심리가 마음질환의 원인이 된다. 둘째, 적개심을 핵심감정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타인을 지배하려고하며, 분노를 가슴에 품고 이를 표출하는 것이 병의 원인이 된다. 셋째, 열등감을 핵심감정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항상 부족하다는 심리로 콤플렉스가 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넷 째, 과욕을 핵심감정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심리로 시기나 질투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 다섯째, 낮은 자존감으로 무기력하며 사소한 것에 예민해지는 의존성의 심리가 병의 원인이 되는 사람들이다. 여섯째, 강박성을 핵심감정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매사에 완벽하게 준비해야하는 불안심리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 일곱째, 성적추구를 핵심감정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기에 맞는 성 상대를 찾으며 쾌락을 추구하는 심리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 여덟 째, 은둔회피를 핵심감정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강한 트라우마 이후 사람들과 단절하고 고립되어 근심과 걱정을 하는 심리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를 질병의 원인으로 간파하고서 훈육하고 지도하였으며, 자연의 생약을 이용하여 정신병을 치유하였다.상한론에 등장하는 처방은 인체의 항상성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곧, 인체의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의학’이다.이를 통하여 근본적으로 인체를 정상화시켜주고 자연 그대로의 치유력을 회복시키게 한다.이것이 “상한의학”의 원리이다.

현대인들도 1800년 전 고대인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읽어내고 비뚤어진 감성을 정상화시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회복된다. 현대인들은 고대인들보다 허구와 허상에 덮여져 있는 상태라 걷어내는 작업에 시간이 좀 더 소요되는 것뿐이지, 7만 년 전 인간의 본성과 맑은 영혼은 고스란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치료자도 탐욕을 버리고, 자신의 거짓을 벗겨내는 작업을 한다면 우리들의 몸은 자연스럽게 바뀌고, 마음도 정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몸과 마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몸이 기쁘면 마음도 기쁘고, 마찬가지로 마음이 행복하면 몸도 기쁠 수밖에 없다. 인간을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열쇠는 진작 발견되었으나 후인들의 탐욕으로 불행히도 사장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자본과 제약회사의 이익 등에 뒤덮여 버렸다. 다시 한 번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실이다.

근대에 들어서 반성의 차원으로 인간의 본성을 찾기 위한 작업들이 있었다. 인간의 정신을 탐구하는 프로이드, 융과 같은 위대한 학자들이 많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1900년대 초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심리학자가 주장한 개인 심리학이다. 최근에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미움 받을 용기” “버텨내는 용기”라는 책에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아들러는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프로이드의 ‘원인론’보다 개인의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 ‘목적론’으로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였다. 아들러는 모든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인식하여, 인간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의미부여의 방식에 따라 라이프 스타일이 결정되고 그것이 곧 성격으로 나타난다고 하면서, 행복하고 싶다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먼저 내 자신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마음 치유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의 실마리는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미흡하고 아쉽다.

이처럼 비뚤어지고 거짓된 마음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이다. 애니 머피폴이 지은 “오리진”(origin)이라는 책에서 우리의 건강, 기질, 취향, 스트레스는 엄마의 뱃속 9개월인 태아기에 형성이 된다고 말한다. 삶의 질을 결정짓는 최초의 시간은 자궁에서 시작 되는 것이다. 인류의 유전정보는 연쇄고리처럼 대물림되어 연결이 되고, 태아는 자궁에서 엄마의 모든 정신적 상황을 고스란히 기억에 저장한다. 만일 엄마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끼고 사악하고 나쁜 마음을 가진다면, 태아는 그것을 그대로 기억하고 출생 후에는 그대로 행동으로 이어간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연출되는 것이다. 인류가 사악한 마음을 품기 시작했던 그때로부터 악의 릴레이는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악의 연대기를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끊어 내듯 잘라내야 한다. 잉태한 산모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심어서 키워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거짓 나무는 점점 사라지고 7만년 전 행복했던 사랑의 나무가 점점 자라 조금씩 세상은 바뀌어 갈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찾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7만 년 전 행복했던 그때의 세계 “있는 그대로”의 정신세계로 돌아가면 된다. “있는 그대로”는 인도 철학가인  마하리쉬의 책 제목이다. 깊이 공감이 가는 글이다. 그래! 원시 인류가 가지고 있던 그 마음 그대로 내 안에 남아있는 참자아를 다시 일깨우면 된다. 참자아를 가로막고 있는 허상을 제거해야 한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모든 허상을 제거한 상태에서야 가능하다. 궁극적 진리는 본래 상태로 존재하는 것 뿐이다. 그 이상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스크린이 실재이고 그 위에 나타나는 장면들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버려야 할 것은 세상에 얽매이게 하는 개인적인 욕심과 이기심이다. 우리는 그동안 허상을 보고 ‘나’라고 인식하며 속아 온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오랫동안 덧 씌워진 거짓과 탐욕, 욕심, 시기, 질투, 경쟁, 분노 등을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러한 허상은 에고(ego)이고  에고를 버리면 내 마음과 영혼에 담겨진 참자아를 찾게 된다. 마음이 참 자아이고, 곧 그 참자아가 인간 본연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참자아를 찾아내기 위한 실천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참자아를 탐구하고 수행하는 목적은 마음의 근원에 머무는 데에 있다. 자기가 아닌 것들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거두어들이면 결국 근원에 도달하게 된다. 기억하라! 마음이 내면으로 향하면 참 자아이고, 마음이 외부로 향하면 허상이다. 언제나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을 가슴속에 머물게 하면 그 가슴이 곧 참자아이다. 행복감 속에 머무는 사람은 온 세상에 평화뿐이다. 내 마음을  내 가슴에 머물게 하면 그 흔들림 없는 고요함이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찾아올 것이다.

흔들림 없는 고요함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며,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허상을 제거하면 진정한 참자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인류가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참자아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7만년전 인류의 모습처럼,1800년전 ‘상한의학’의 그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